한 데 모아
담백한 사람
담백하게 산다는 건 장식물을 덜어내고 비워내고 굳이 과하게 꾸미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의 모형은 담백을 거부한다. 젊음을 움켜쥔 손으로 걸으며 성취와 도전, 열정을 마주할 때 빈공간을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 애쓴다. 빈칸을 견디지 못했다. 치열하고 때로는 조급한 걸음이 의미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믿었다.
패션을 배우며 믿음은 선명해졌다. 옷은 천이 아니라 값이고 소유는 단순한 만족을 넘어 존재의 무게가 된다. 숫자로 환산되는 질서에 순응했다. 고차원적인 행복과 그저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누려야만 청춘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옷장에 행복한 나, 몇십 벌이 있었지만 깊어진 공허에 허우적거리는 손을 바라본다. 이번엔 무얼 잡으려는 걸까. 행복이 행복했던 시간은 지날수록 채움은 충만과 멀어졌고, 지금껏 쌓아 올린 것들 사이에서 비어 있는 나 자신을 목도했다. 결국 고급스러움이란 값비싼 옷이나 화려한 장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허세나 사치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자신을 붙드는 내면의 무게와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는 담백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각도를 틀어 담백을 향해 걷는 중이다. 과장과 치장을 걷어내고 본질에 가까워지는 여백만 남긴다. 허황된 기대와 욕망은 아직 여백에 스며있다. 그걸 눌러보려 금욕을 가져왔다. 영속 되기 위해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담백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비워낼 수 있는 용기가.
문장 수집가
이건 내 취미다. 보기만 해도 좋은 기분을 안겨주는 문장을 모은다. 단어들이 하나 둘씩 엉겨 붙어 기차 놀이를 할 때, 나는 밑줄을 그어 철도를 만든다. 그렇게 달려 나에게 오거나, 그대에게 닿거나.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이야기』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에게는 왠지 모를 사랑스러움이 느껴졌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모든 힘은 제가 가진 행복에서 나오고, 의욕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와요.”
『21세기 마지막 첫사랑』 “그런 순간이 모여 바다는 양우에게 알고 싶은 세계가 됐다. 해안만 궁금해하던 양우의 세계가 확장된 셈이었다.“
『명랑한 은둔자』 “우리 일상의 배경 음악은 전혀 다르고, 가끔은 둘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냥 서로 웃을 때 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같은 화음에 맞춰서 움직인다는 걸 깨닫는다.”
『첫사랑의 침공』 ”모든 은하를 가로질러서라도 어떻게든 다시 너를 찾아올 거야.“
『모순』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밤의 공항에서』 “세상에는 뾰족한 해답을 가질 수 없는 일이 많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그래, 너는 너의 한 번 뿐인 인생으로 무엇을 한 거지?”
대부분의 서적은 특별한 평범함과 평범한 특별함을 담아낸다. 그러곤 생기 가득한 문체로 서로가 서로에게 답을 한다. 오늘도 별빛이 가득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체감한다.
🩷
언제부터 사랑은 하트 모양이었을까. 불현듯 달아오르는 뺨의 붉은 곡선을 맞대고 열기를 담을 만한 수식어를 붙일 도형인가. 아니면 날카로운 위쪽의 오목함은 결핍과 그리움이 내제된 틈이며 둥글게 불룩한 아랫부분은 완비를 향한 은밀한 열망인가.
“수많은 지구인을 재쳐두고 느닷없이 너를 사랑한다.”
존재가 존재에게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비합리적 질서를 경험한다. 계획도, 논리도 없는 충동 속에서 우연과 필연이 얽힌 장면이다. 고심 끝에 내뱉은 호흡과 세월과 체온이 스며든 말. 사랑이란 수식어가 붙은 인물에게 거침없고도 명쾌하고 현명한 답이었길.
사랑에 빠진 바보는 어떤 장르일까. 뜨거움 속에 형체가 녹아 흐르는 불확정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 덮고 그 안에서 자신을 내맡기는 사랑을 향유하는 존재. 그 날의 향을 기억하며, 속도와 시간 속에 둥둥 떠도는 한 명의 바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사랑하는 능력을 잃지 않은 그는 장르를 넘어선다.
그저 사랑이 사랑됨을.
선한 영향력
선함(善, Goodness). 사전은 이렇게 풀이한다. “어질고 세상에 무해하며, 악의 요소가 배제된 심성과 태도.“ 하지만 단어는 스스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온기를 담으려면 직접 행해야 한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싶다. 그런 삶을 추구하게 된건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믿음의 선배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서로에게 작은 빛이 된다. 한 번의 다정한 말,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손, 무심히 흘려보낸 웃음조차. 그 빛을 감지하는 순간 우리는 생생한 체온이 남는 선함은 체계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이해한다. 순간의 다정함이 겹겹이 쌓여 나를 기꺼이 “선함 쪽으로 기울어지는” 선택으로 이끈다.
타인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배움의 공간이 있다. 그 사이에서 세상의 선을 관찰하고, 비로소 깨닫는다. 선은 고립된 자아 속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안에서 피어나고 타인을 섬기며 사랑할 때 더욱 깊어진다. 그 섬김 속에서 나만의 선함을 단련하고 사랑 속에서 나만의 빛을 발견한다. 어떤 이는 스치기만 해도 따뜻함을 남기는데 그 온기는 오래 머물며 나를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결국 삶이란 서로의 선함을 통해 무지막지한 기쁨을 배우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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